일제강점기 미곡시장을 기존의 생산과 수탈의 측면이 아닌 유통구조를 중심으로 연구한 책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미곡시장의 변화과정, 미곡증산과 상품화정책, 조선미의 수이출과 일본시장에서 조선미의 경쟁구도와 이입・이출상 간의 거래, 조선미의 일본내 이입량 통제를 통한 조선총독부와 일본정부의 갈등, 전시 통제경제와 미곡시장의 해체과정을 미곡의 유통구조와 과정을 통해 규명했다. 이 과정에서 특이할 점은 조선미의 상품화 정책이다. 조선미의 상품화를 촉진하기 위해 총독부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미곡검사제를 도입하였다. 미곡 검사제도는 미곡의 품질을 표준화하여 명병(銘柄)이라 일컫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탄생시켰으며, 브랜드만 가지고도 대량거래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조선미는 전 조선으로부터 통일적인 6개의 명병으로 분류되어 인천, 부산, 군산, 진남포, 목포의 5대 항구로 집중되었다. 이 결과 1931년부터는 연평균 약 8~9백만 석의 조선미가 일본으로 이출되었고 대만도 1933년부터 연간 400~500만 석의 봉래미(蓬萊]米)를 일본으로 이출하였다. 이것은 조선과 대만의 총 미곡생산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일제시대의 미곡시장은 1910~1938년까지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기와 1939~1945년까지의 전시 통제경제 시기로 크게 구별된다. 일제가 전쟁에 들어가기 전까지 조선의 미곡시장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 아래서 움직였다. 미곡은 조선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었으나 농업잉여의 분배에 참여할 수 없었던 농민들의 생활수준은 개선이 거의 없었다. 일제시대 때 조선의 도회지와 농촌 사이에는 빈부의 차가 심하였고 문화적 교류도 거의 단절 상태에 있었다. 조선의 경제는 농업부문과 비농업부문 또는 도시경제와 농촌경제 사이에 깊은 괴리가 있는 전형적인 이중경제(二重經濟)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일제가 도입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 아래서 조선 농민이 생산한 미곡이 상품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조선미가 일본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 조선미가 일본의 미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막대한 양의 미곡 이출대금은 누구에게 귀속되었으며 이 돈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였는지, 식민지 조선의 미곡시장에서 조선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개항기 조선의 미곡시장과 유통 _ 1 1. 조선 후기의 미곡시장과 유통 _ 3 2. 개항과 미곡 수출시장의 형성 _ 18 3. 일제 統監府 시기 미곡시장의 변화 _ 30
제2장 한일병합 이후 조선의 미곡시장과 유통 _ 43 1. 1910년대 조선 미곡시장의 변화 _ 45 2. 1920~30년대 消費地 市場의 미곡 유통 _ 54 3. 경성시장의 미곡거래 방법 _ 62 4. 조선총독부의 市場規則과 신식시장의 출현 _ 68 5. 補論: 조선총독부의 官制와 法令체계 _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