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조선시대 사회사와 한국사 인식
김인걸(金仁杰) 저
44,000원
44,000원
판매중
경인문화사
양장
152*224mm(A5신)
556쪽
2017년 8월 25일
9788949942933
책 소개
이 책은 저자가 한국사학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논문부터 비교적 최근의 시평적인 글까지 그간 써 온 글 가운데 14편을 골라 크게 3개 분야로 나누어 엮은 것이다. 때늦게 30여 년의 간격이 있는 글들을 묶어 하나의 책으로 출간하였으니 나름의 변이 없을 수 없을 것 같아 몇 자 적어 서문에 갈음한다.

1부의 <연구 리뷰>에는 조선후기 신분사와 조선시기 사회사에 대한 연구사 검토 논문 2편을 실었다. 앞의 것은 1986년 창립한 근대사연구회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 <한국중세사회 해체기의 제문제>(1987)에 실었던 것이고, 후자는 1988년 창립된 한국역사연구회의 사회사연구반에서 만든 책에 실린 글이다. 모두 공동연구의 결과물이다. 모든 연구는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사 검토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회’ 초기에는 연구사 검토와 자료 확보에 열정이 넘쳐났다. 연구생활 초기의 작으로 애착이 가는 글이지만, 집중력에 비해 다루는 폭이 넓지 못하고 의욕이 넘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2부에는 조선후기 향권의 추이를 다룬 석사학위논문부터, 농민항쟁의 조직기반, 향촌 사회문제, 사족의 거향관, 향촌사회에서 유교적 전통의 지속과 단절이란 주제의 글까지 5편의 글을 배정했다. 필자의 관심분야와 그 변화까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향안 등 지방 사족 집단이 남긴 자료, 첩보류 민장류 등 지방관 자료, 각종 지방지, 문집 등 필자가 집중적으로 검토한 자료들을 눈여겨볼만한 글들이다. 그 가운데 촌락조직 변모와 농민항쟁의 조직기반에 관한 글은 작은 사연이 있다. 일찍이 간행되었지만 이용이 못되다가 늦게야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많이 이용되어 오는 <임술록>을 제한된 시공간에서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어 쓴 것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미리 검토해 두었던 연구사 정리 노트를 가지고 기존 글들이 얼마나 실증적 기반에 충실한 것인지 따져보는 재미로 ‘시험출제’라는 격리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을 전혀 의식할 수 없었던 추억이 그것이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향권’이나 ‘향전’이라는 용어가 익숙치 않았는지, ‘鄕權의 推移’라는 논문 제목을 ‘鄕校의 推移’라고 잘못 표기한 것이 아직도 공공기관의 목록에서 고쳐지지 않고 있고, 일본인들이 <속대전>에 두주를 붙이면서 향전(鄕戰)을 시골사람들의 돌싸움[석전(石戰)]이라고 잘못 새긴 내용이 국가적 사업으로 이루어진 번역서나 백과사전에서도 일부 그대로 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의 편견이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실감한다. 지금은 지방사나 향촌사회사 분야가 조선시대사 연구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고문서나 일기 등 자료의 확대로 연구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바 금석지감을 느끼게 된다.

3부에는 사학사 관련 글 2편, 역사교육 관련 글 1편, 조선시대 연구사 1편, 그리고 정석종, 김필동, 김현영 등 3인의 저서에 대한 서평의 글 3편 등 7편의 글을 실었다. 사학사 관련 글 가운데 앞의 내재적 발전론에 관한 글은 김용섭교수 정년기념논총의 1권 <한국사인식과 역사이론>(1997)에 실린 것인데, 편찬위원장 고 정창렬 교수의 정중한 부탁을 사양치 못하고 능력에 넘치는 주제를 다룬데다가 ‘편협한’ 주장으로 후배들한테 부담감을 안겨준 것은 아닌가 가끔 자문해보는 글이다. 뒤 「현대 한국사학의 과제」는 한국역사연구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연구회의 진로를 재점검해보는 목적으로 쓴 것인데, 해방 후 현대 한국사회의 모순구조가 전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초창기 ‘과학적 역사학’을 제창하고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했던 선배들의 고민과 필자 자신의 그것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글이다. 아울러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검토 과정에서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역사학의 체계를 고민하였던 고 김철준 교수의 고뇌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사교육 관련 글은 오래된 글이기는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는 정체성 확립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자국사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교과서제도와 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서 시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 포함시켰다. 나머지 세 분의 글에 대한 서평은 필자와의 이생의 인연이 이끈 글들로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라 수록하였다. 특히 고 정석종 교수는 평생 지론이 조선후기 정치사에는 민중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후기사만이 아니라 조선 전체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도 ‘민중의 참여를 부각시킨다’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나아가, 민의 존재를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그리하여 조선시대사를 국가(국왕)와 지배계급 및 민이라는 이들 3자가 만들어 나간 서사로 볼 것을 제안해온 필자의 생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다.

수록 논문 선정이 그렇고 <조선시대 사회사와 한국사 인식>이라는 책의 제목도 후배 제자들이 정해준 것이다. 책을 묶는 데는 심재우 교수, 송웅섭·김경래 박사 등 저자의 그간 대학원 지도학생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아니, 박사학위논문 외에 별도로 한 권의 책으로 간추린다면 그들이 이런 정도의 글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왔기에 그대로 따른 것이다. 책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필자의 주 전공이 조선시대 사회사이고 대학에서 교육만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학회 활동에 발을 담그다 보니 자연히 필요에 따라 연구사나 사학사 관련 글을 써 왔기에 제목이 그렇게 붙은 것이라고 하겠다. 그들이 굳이 옛 글을 같이 묶어 내자고 독촉한 것은 이를 통해 필자의 연구 편력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겠으나, 그것보다는 문장의 형식이나 내용이 달라져 나온 것을 통해 타산지석을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처음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고 작업의 장으로 역사를 선택한 것은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역사 속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온 것이니 이를 공부하면 어떤 새로운 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연구와 삶을 일치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체득하게 된 것은 아주 후의 일이지만, 대학에서 존경하는 선생님들로부터 자국사와 자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기를 수 있었고, 우리 문화를 반석에 올려놓는 데 일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것은 큰 기쁨이자 자랑이었다.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나,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연구 생활을 해오면서 조금이나마 생각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3부에 실린 「조선시대사 연구가 걸어온 길」에서 언급되듯이 역사는 어떤 설명 틀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과 시대적 조건 속에서 역사의 주체들이 자신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그 과제들을 해결해 나갔는가를 역사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역사 연구도, 역사 자체와 마찬가지로, 사회 구조와 변동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을 만들어 온 사람들은 어떠한 길을 가고자 했고 걸어 왔는가 하는 점을 결과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역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는 것이다.

우리가 조선을 유교국가라고 하고 조선사회를 유교사회라 하는 데 반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사회의 유교적 전통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대부분 조선 말기 망국의 책임을 져야 했던 양반들의 그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은 일견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문중을 이루어 살고 있는 동성촌락에서 산소와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양반의 모습에서 양반문화의 ‘전형’을 발견하고 그 양반사회의 지속성을 강조하고 그 원인을 찾아나서는 일부 외국 연구자의 인식 태도를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조선사회를 연구하는 한국인 내부에서조차 결과론에 얽매여 조선사회의 변화를 설명함에 있어 역사적 접근, ‘체제적 접근’을 문제 삼고 미래에 대한 전망에 눈을 감는 경향이 불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신채호는 유교국가인 한국이 쇠약하게 된 이유가 ‘유교를 신앙함으로 쇠약함이 아니라 유교를 신앙하기를 그 도로 하지 아니함으로 이같이 되니라’ 라고 정당하게 지적한 적이 있다. 조선이 쇠락한 이유가 유교 때문이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 온 유자들이 유교의 본질을 잃고 그 허례허식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년을 맞이하여 그간 쓴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내려 하니 소회가 한둘이 아니다. 생짜무지의 촌놈들에게 한문 독선생을 소개하여 눈을 뜨게 하시고 한눈팔지 않고 한 십년 한 우물을 파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용기를 주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일계 김철준 선생님, 황량한 공릉동 벌판 교양과정부에서 고대하던 동숭동 교정에 들어서자 근대사학사 강의를 통해 역사학도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심어주시고 무수한 자료와 후진에 대한 기대로써 학문의 길에 들어서게 해주신 송암 김용섭 선생님의 학은에 감사드린다. 엄혹한 시절 대학 밖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가꾸어 오시면서 조선시대 진경문화의 줄기를 세우고 학문의 자세와 사제동행의 모범을 체현하여 공부의 즐거움을 일깨워주신 가헌 최완수 선생님께도 지면을 빌어 인사드린다. 대학 안에서는 무엇보다 귀와 눈이 밝은 많은 학생들이 있어 쉽지만은 않은 30 여년의 길을 함께 걸어올 수 있었으니 이들에 대한 인사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가능한 원문에 크게 손대지 않기로 했지만 한두 가지 양해의 말을 해두어야겠다. 하나는 한글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는 한자를 병기하였다는 점이다. 한문 문장이나 한자 용어를 피할 수 없을 때는 그에 대한 보충 설명을 부기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오래 전 쓴 글에서는 생경한 한문이 불쑥불쑥 나타나 눈에 거슬릴 것이다. 그리고 본서의 제목을 <조선시대 사회사와 한국사 인식>이라고 하였지만 제목에 걸맞는 한국사 인식의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역사인식이라는 것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어떤 도식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역사 연구자가 역사 인식을 다룸에 있어서는 자신의 연구와 관련해서 나름의 개성 있는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사 연구자가 전달하는 목소리는 사회사 연구의 결과 얻어진 어떤 지혜나 설명 틀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제목을 위와 같이 붙여놓고 나니 이 책이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 더 확연해 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양진석 학예관과 정용욱 교수의 주선으로 경인문화사에서 출간될 수 있었다. 기획과 실무를 맡아주신 김환기 이사님과 편집부 제위께 아울러 감사드린다. 오래된 원고를 찾아 직접 타이핑하느라 수고해준 대학원생 이민정, 정성학, 최형보 군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반평생 변변한 호강 한번 시켜주지 못했음에도 이 책에 수록된 모든 글에 같이 동반해온 동반자 박현경 님께 이 책을 드린다.
목차
서 문

1부 연구 리뷰

1장 조선후기 신분사 연구현황
2장 조선시기 사회사 연구와 자료활용 방안

2부 조선후기 사회사 연구

3장 조선후기 향권의 추이와 지배층 동향
-충청도 목천현 사례-
4장 조선후기 촌락조직의 변모와 1862년 농민항쟁의 조직기반
5장 민장(民狀)을 통해 본 19세기 전반 향촌 사회문제
6장 조선후기 재지사족의 ‘거향관(居鄕觀)’ 변화
7장 조선후기 향촌사회에서 ‘유교적 전통’의 지속과 단절

3부 사론 및 서평

8장 1960, 70년대 ‘내재적 발전론’과 한국사학
9장 현대 한국사학의 과제
- 과학적 역사학의 비판적 계승 -
10장 우리 시대의 한국사 교육
11장 조선시대사 연구가 걸어온 길: ‘근대 기획’ 넘어서기
12장 사회 ‘제도’와 ‘조직’ 사이의 거리 좁히기
(서평 : 김필동, 1992 <한국사회조직사연구-
계 조직의 구조적 특성과 역사적 변동->, 일조각)
13장 조선후기 정치사상사연구에 보내는 쇳소리
(서평 : 정석종, 1994 <조선후기의 정치와 사상>, 한길사)
14장 사회사에서 향촌사회사로
(서평 : 김현영, 1999 <조선시대의 양반과 향촌사회>,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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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인걸(金仁杰)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향촌사회 변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한신대학에 근무하였고, 1986년 9월 이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시기 사회사 연구법>(공저, 1993), <20세기 역사학, 21세기 역사학>(공저, 2000), <정조와 정조시대>(공저, 2011), <조선후기 공론정치의 새로운 전개>(2017) 등이 있다. 주로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관련 글들을 써 왔고, 근자에는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주제에 관심 갖고 글을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