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향촌사회 지배구조의 변동
김인걸(金仁杰) 저
30,000원
30,000원
판매중
경인문화사
양장
152*224mm(A5신)
362쪽
2017년 8월 25일
9788949942926
책 소개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조선후기 향촌사회 변동에 관한 연구 –18, 19세기 ‘향권’ 담당층의 변화를 중심으로-」(1991)를 제목을 약간 바꾸고, 한자 사용이 많은 문투를 가능한 요즈음에 맞게 고쳐서 출간한 것이다. 20년이 훌쩍 지나 이미 용도 폐기되었음직한 글을 굳이 정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출간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 한껏 버텨보았으나 힘이 부쳤다. 반평생을 넘게 대학에 몸담아 오면서 변변한 저서 하나 없이 떠나는 모습을 내켜하지 않는 몇몇 나이 든 ‘악동’들을 핑계 삼아 이렇게 몇 자 적어 출간의 변에 갈음한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필자가 대학에 몸담게 된 1980년대 초반은 석사학위논문이 공간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입도선매되어 대학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기초도 다지지 못한 상태에서 강의하랴 ‘학생지도’하랴 바삐 다니다보니 결코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조선후기의 역사와 역사를 만들어 나간 이들이 남긴 무수한 자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18, 19세기 조선후기 사회에서는 이제껏 왕조국가를 이끌어왔던 국왕이나 지배계급이 활기를 잃고 경직되어가고 있을 때, 향촌에 토착하여 살고 있던 일반 민들까지 지배체제가 노정한 총체적 난국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지배계급 안에서도 다양한 위기 타개책이 모색되는 가운데 일반 민의 처지에 한 발 다가가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도 있었다. 상호 영향관계를 밝히는 작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그 상호관계를 밝혀줄 수 있는 ‘사회사’ 자료들은 미답의 새 경지로 필자를 이끌었고,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도록 다그치고 격려하였다. 무모한 시도에 시행착오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 가운데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은 ‘중앙집권체제’의 변방에서 한유하는 듯한 필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이 책이 조선후기사가 필자에게 베푼 덕에 대한 보답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임은 물론이다.

박사학위 논문은 통과의례로서만이 아니라 공부의 수준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인데 석사논문 이후 큰 진전이 있었다고 하기에도 주저되었기에 시간을 꽉 채우고 나서야 제출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읽었던 자료들이 학계에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게 해야 하겠다는 욕심에 눈에 차지 않은 상태에서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신 지도교수 한영우 교수님과 심사위원분들께 한참 늦었지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논문의 부족함은 논지에서만이 아니라 자료들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용어들의 생소함에서도 드러났다. 논문의 주제는 향권 담당층의 변동인데, 결론 부분이 19세기에 들어와 부민층의 성장에 한계가 드러나고 이를 추동한 관주도 향촌 통제책이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선후기 성장하고 있던 부민층이라 할 ‘신향’층의 대두까지만 다루는 것이 논지 전개상 낫겠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은 당연할 일이다. 이 점은 지도교수의 ‘변호’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향권(鄕權)’ 이나 ‘향전(鄕戰)’이라는 용어도 낯설어 문제가 되었다. 왕명을 받아 수령이 통치하는 중앙집권체제 하의 조선왕조에서 무슨 향촌사회 권력구조라고 이름할만한 것이 있겠는가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자료 취급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이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본다는 과욕이 문제였지만 그 가운데 선별되어 인용되는 자료의 대표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을 구사하는 데도 서툴렀다. 인용된 문집 자료 가운데 한 가지, 해당 지역에서 꺼리는 내용이 특정 판본에서는 빠지고 있다는 점을 살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뜩한 느낌이다. 문집을 이용하려면 해당 지역의 구체적 사정과 그 간행 이력까지 꼼꼼히 살펴 전후 판본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잘 살펴야 하는 것인데, 자료 고생을 크게 해보지 않고 ‘도서관’에 안주해 온 데서 오는 나태함은 보다 풍부한 설명을 제한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 많은 여러 지역에 전래되어 온 1차자료들의 경우에는 어떠하겠는가.

지금은 ‘향촌사회사’라 하여 조선시대 연구에서 제법 시민권을 행사하게 되었고, 그만큼 또 다른 짐을 지게 되었지만, 처음 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만 하더라도 연구 방향이나 방법이 잘 보이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조선후기사 연구는 지주제와 신분제라는 두 기둥에 의해 지지되어 오던 조선사회가 어떻게 변모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구명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후기 ‘사회변동’을 설명함에 있어 기존의 설명틀로서는 주민 대부분의 삶의 현장인 향촌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주제 개혁론, 신분제 개혁론들이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았다. 한 발자국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향촌사회의 실상, 특히 향촌사회 각 사회세력의 동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발길이 미치는 한 자료의 숲으로 들어갔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 등 기존에 활용되어오던 연대기 외에 문집, 지방지, 보첩류, 민장치부책 등 지방통치사 관련 자료, 향안 등 군현단위 지배계급이 남긴 자료 등을 기본 자료로 하여 조선후기 지방사회, 특히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지배구조의 변동을 개관해 본 것이다. 그간 지방사 연구가 진전되면서 군현단위 향촌사회의 실상에 밀착한 연구들로써 초기 연구가 가지는 여러 문제점들이 다수 교정되기도 하였고, 삼남 지역을 넘어 서북지방의 실상에 대한 연구의 진전으로 조선시대 군현제나 향촌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국왕과 지배계급 및 민, 이들 3자가 엮어간 조선왕조사회의 전 역사를 시간과 공간을 고려하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그 기반, 기초가 더 다져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고, 그런 각도에서 보면 조선후기 새로운 사회세력의 성장과 한계라고 하는 본서의 주제가 그대로 용도폐기될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들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한국의 근대를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타산지석이나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본문 내용은 본래 상태에서 가능한 크게 손대지 않기로 했지만 두세 가지 양해의 말이 없을 수 없을 것 같다. 하나는 재지사족이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를 가능한 많이 줄였다는 점이다. 논문을 제출할 당시에는 물론, 특히 향촌 사족의 향당윤리라 할 ‘거향관(居鄕觀)’에 관한 글을 쓰면서부터는 재지사족이라는 용어 대신 거향사족, 혹은 단순히 향촌사족이라는 용어로 바꾸어보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으나 가능한 기존의 연구들을 고려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 접두어 없이 사족이라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는 곳에서는 재지사족이란 용어를 절제하여 그 빈도가 줄어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분, 계급, 계층 등의 용어 사용에 있어 엄격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점이다. 연구생활에서 하나의 큰 전기가 되었던 ‘근대사연구회’ 활동의 공동연구 결과물인 󰡔한국중세사회 해체기의 제문제󰡕(1987)에서 필자가 맡은 부분이 「조선후기 신분사연구 현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신분과 계급, 계층이라는 용어를 핵심 개념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 생각을 실전에 적용하기에는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현실이 잘 허락하지 않았다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대신한다. 다루는 대상이 주로 양호(호서, 호남) 및 영남 등 삼남지역이고, 그 지배계급의 핵심인 사족의 범주와 특성에 대한 후학들의 연구의 진전에 의해 교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본서의 제목인 향촌사회 지배구조의 변동을 다룸에 있어 신구 세력간 대립 양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계통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는데 미흡했다는 점이다. 주 논지는 향촌사회 운영의 주도권인 향권(鄕權)이 18세기 중반을 전후로 하여 사족(그 후예라 할 유림)으로부터 이향층(吏鄕層)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즉, 18세기를 전후하여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구조가 관 주도의 그것으로 변화하고, 수령이 독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사족의 통제 하에 있던 이서(吏胥)와 향임(鄕任) 등 이향층이 관권을 배경으로 새롭게 대두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는 신구 세력 간의 대립을 향전으로 본 것인데, 새롭게 향권에 접근하고 있던 세력들로 인한 향중쟁홍(鄕中爭鬨)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기존 사족(유생들) 내부에 존재해오던 대립에 대해서는 배려가 충분치 못하였다. 이번에 책을 내면서 다소간 보완을 하였지만 여전히 불만스럽긴 마찬가지이다.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앞에서 힘을 써 준 양진석 학예관과 정용욱 교수, 실무를 맡은 심재우 교수와 송웅섭・김경래 박사, 책의 편집에 수고해준 대학원생 윤민경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책이 이만한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주신 경인문화사 김환기 이사님과 편집부 이하 여러분께 두루 감사의 말씀 드린다.
아주 늦었지만, 이 책을 저자가 대학 입학 한 지 1년도 못되어 떠나신 아버님 영전에 삼가 올린다.
목차
서 문

서 론

1장 18세기 사족중심 향촌 지배체제의 동요
1. 향안(鄕案)의 성격 변화
2. 사족 중심 동계(洞契)의 성격변화

2장 18세기 후반 관주도 향촌통제책 강화와 ‘향전(鄕戰)’
1. 관주도 향촌통제책 강화와 ‘이향(吏鄕)’층의 대두
2. ‘향전(鄕戰)’과 그 전개

3장. 19세기 전반 부민・이향층의 동요와 관주도 향촌통제책의 파탄
1. 부민층 동원의 한계와 부민・이향층의 동요
2. 관주도 향촌통제책의 파탄

결 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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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인걸(金仁杰)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향촌사회 변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한신대학에 근무하였고, 1986년 9월 이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시기 사회사 연구법>(공저, 1993), <20세기 역사학, 21세기 역사학>(공저, 2000), <정조와 정조시대>(공저, 2011), <조선후기 공론정치의 새로운 전개>(2017) 등이 있다. 주로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관련 글들을 써 왔고, 근자에는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주제에 관심 갖고 글을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