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 - 6・25한국전쟁에서 사드 갈등까지
주재우(朱宰佑) 저
48,000원
48,000원
판매중
경인문화사
양장
152*224mm(A5신)
648쪽
2017년 9월 15일
9788949942940
책 소개
중국이라는 나라에 가서 유학을 한다는 게 참 재밌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나는 중국에 갔다. 그렇게 멋모르고 중국 땅을 밟은 게 1990년 8월 말이었다. 가본 사람은 보기 힘들었고 중국에서의 유학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다만 대학 2학년 때 중국 근현대사라는 수업을 석학(Vera Shwarcz)한테 듣고 ‘중국이 재밌구나’라는 생각에 중국어를 잠시 배웠을 뿐이었다. 근데 나보다도 중국의 매력에 더욱 흠뻑 빠지신 분이 계셨다. 우리 아버지였다.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중국어를 독학하시겠다며 출퇴근길에 매일 들으시고. 출장으로라도 중국에 가보시겠다며 기꺼이 이직까지 하셨다. 이직을 하자마자 실제로 1988년 5월에 첫 출장으로 북경에 가셨다.

이후 우리 부자(父子)는 중국에 대해 간간이 이야기를 나눴다. 많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스포츠 기자가 되겠다던 나는 아버지와의 상의 끝에 마음을 접었다. 당시 우리나라 스포츠 시장이 너무 협소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미국에 남을 거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미국에서 백수가 될 뻔 했던 내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꿨다.

“대학원에 가서 중국 공부 좀 해볼까 합니다” 했더니 아버지도 동의하셨다. 영국과 미국의 몇 개 대학원에 지원서를 냈고, 합격 연락이 왔다. 그런 와중에 서울에서 전화가 한 통 왔다. 아버지는 다짜고짜 중국에 가보라고 하셨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중국이라구? 오, 예!” 한 마디만 내뱉은 채 중국행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무렵에 천안문사태가 터졌던 1989년 6월이었다. 중국의 어느 학교도 당해 연도에 유학생을 받지 않았다. 영국 대학원 입학을 이미 포기한 나는 또 백수가 될 처지였다. 하는 수 없이 우선 대만으로 중국어를 공부하러 가기로 했다.

대만에서 1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하고 북경으로 향했다. 북경이, 아니 중국이 그렇게 낙후됐을 줄은 상상도 못한 채였다. 그 전에 중국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구체적인 중국인의 생활상이 대화의 소재가 된 적은 없었다. 나의 식견이 짧은 탓에 대화도 지극히 피상적이었다. 중국의 음식, 중국인, 북경의 분위기, 북경의 물가, 중국 경제의 발전상 등이 대화의 주요 소재였는데, 가담항설 수준의 이야기만 나눴다.

그렇게 준비 없이 북경에 가서 생활하다보니, 살다 살다 이런 나라는 처음 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수업에 들어갔다. 교재가 없었다. 교수님의 강의를 다 받아 적어야 했다. 의자는 긴 나무 판때기에 폭은 10센티 내외짜리였다. 학우들과 주르르 열 맞춰 옹기종기 앉아야만 했다. 유리창의 창틀은 나무였고, 그나마 유리는 대부분 깨져 있었다. 겨울엔 난방도 없었다. 받아쓰기를 하는 내 손은 세 시간 수업 가운데 한 시간도 안 돼 꽁꽁 얼어붙었다. 쓰는 만큼 호호 불어야 했기에 손도 입도 바빴던 시절이었다.

이 책을 쓰면서 느끼는 건 격세지감이다. 교재도 없이 가르치고 배우던 중국이 이제는 모든 자료를 온라인으로 제공해준다. 한국의 연구실에서도 신문기사부터 학술논문, 그리고 심지어 e-book까지 인터넷으로 볼 수가 있다. <모택동 선집>부터 <주은래 연보>까지. 이런 놀라운 변화가 아니었으면 집필 자료를 구하러 발품을 수도 없이 팔아야 했을 것이다. 대학원 시절 교재 하나를 상해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상해까지 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방에서 거의 모든 중국 자료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27년이 흐르는 동안 중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을 따라잡아 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경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미래가 궁금해진다. 중국의 부상이 계속될 것인가. 미국은 중국을 언제까지, 그리고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견제의 과정에서 두 강대국의 충돌은 끝내 불가피한가. 27년 전에는 가히 상상도 못했던 질문들이다.

미국과 중국, 중국과 미국, 두 강국 사이에 살면서 우리는 선현의 말씀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이 같은 갈등을 못 느낀 이유는 단순했다. 냉전 체제 속에서 중국은 ‘죽(竹)의 장막’을 치고 있었고 미국은 우리에게 안보의 우산을 씌워줬기 때문이다. 미국이 놓아준 울타리 내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영’에서 잘 살기만 하면 되었다. 중국을 포함한 공산국가와의 교류 단절로 우리에게 중국은 그네들의 세상(공산진영)에서 살고 있는, 베일에 싸인 나라 불과했다. 북한과 합세해 남쪽으로 내려오지만 않으면 되는, 경계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던 존재였다.

그러나 냉전의 종결로 진영 체제가 무너지면서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우리와 중국의 교류도 일어났다. 그러면서 때론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고 나라 관계가 더 긴밀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 선택의 딜레마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양분된다.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놓고 설전도 왕왕 벌어진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눈뜨고 보기 안타까운 장면들이다.

우리가 우리끼리 설전을 벌일 때 불행하게도 이들은 웃고 있다. 이들은 알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돌 하나 던지면 얼마나 큰 파장이 발생하는 지를. 그래서 해가 갈수록 이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돌을 던지고 있다. 그네들이 던지는 돌은 우리를 생각해서 던지는 게 아니다. 우리를 교란시키고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네들은 우리의 옥석을 다 채가기 바쁘다. 그리고 그네들끼리 나눠먹는다.

우리가 그네들의 옥석을 분간 못하고 우리의 옥석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우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 손해는 보이지 않는 것부터 물질적인 것까지 총 망라될 수 있다. 설전을 벌이기 위한 준비 작업에 투자하는 시간부터 정신적 번뇌, 사회적 비용과 물리적・감정적 상처, 물질적 손실까지 다 포함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네들은 돌을 던지기 전에 자기네들끼리 사전 교감과 소통을 갖고 소위 말하는 ‘짜고 치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하나다. 지난 70여 년 동안 두 강대국이 각자의 국익을 위해 어떤 식으로 지금까지 ‘소통’해 왔는지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두 대국의 행실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해두고 싶다. 음모를 공모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그네들이 우리 뒤에서 자기네들끼리, 또한 내부적으로 우리와 결부되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논의하고 협상해왔는지를 정작 우리가 모르는 게 죄라면 죄였을 것이다.

지금도 안 늦었다. 왜냐하면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겪을 일이 더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두 나라가 던지는 돌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 책을 내는 이유가 이것이다. 또, 더 이상은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안 다는 식으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신중해져야 한다. 신중하다 못해 더 음흉해져야 한다. 속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돌을 던지는 이유는, 이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약자를 자처할 필요는 없다. 미리 나설 필요도 없다. 우리는 때를 기다렸다가 나서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 레버리지가 생긴다.

시간을 끌어도 좋다. 결정을 늦게 해도 좋다. 두 강대국에게 우리의 입장을 미리, 빨리 말할 필요도 없다. 그네들을 더 안달이 나게 만들어야 한다. 급하게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만만디’가 될 수 있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라. 이들에게 우리보다 더 유용하고 값진 이웃국가들이 누가 있는가. 여기에 우리 레버리지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너무 겸손하다. 너무 과소평가를 한다. 이제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좀 더 여유 있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에게 왔다. 우리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1세기 외교의 방편은 대화와 협력이다. 대화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말은 쉽다. 내가 내 마음도 모르는데 남의 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더 신중하고 더 겸손해져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알 때 협력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외교에서 최악의 독배는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상대방을 못 보게 만든다. 자기 세상에 빠지게 하는 묘한 약이다.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들면 소통이 어려워진다. 그러다보면 사회성 장애를 유발해 대외적인 협력도 불가능해진다.

더 최악의 상황은, 나르시시즘으로 인해 자기만의 지엽적인 정보세계에 갇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끔 된다는 것이다. 자기애를 북돋아주는 사람들의 말만 들리고, 또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자기애에 상처를 주는 소리는 틀린 소리라고 거절한다. ‘다르다’는 소리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여유마저 빼앗아 가버리는 게 나르시시즘이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국내외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이견을 틀린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르다’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다르기 때문에 이견(異見)을 한 번 더 곱씹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열린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틀린 답이란 없다. 다를 뿐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견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이견의 기반도 사실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틀린 경우는, 사실무근에 기반을 둘 때만 틀린 것이다. 이해를 잘 못할 수는 있다. 이해를 잘 못한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이해를 잘 못한 것은 습득한 정보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는 게 우리 선현의 말씀이다.

미국과 중국을 대할 때 먼저 우리가 이 두 나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자문자답부터 해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더 잘 알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우리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는 인재 밖에 없다. 인재에게는 지식이 무기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기 하나를 더 제공하기 위해 이 책을 감히 써봤다. 대한민국에 중국 건국 이후의 미중관계를 전면적으로 다룬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의 처녀작이다. 처음 쓰는 책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 이제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 책의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한 독자들의 많은 질타와 지도편달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선보인다. 출판 경험이 없는 나를 믿어주시고 출판의 기회를 주신 경인문화사의 한정희 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편집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출판사의 김환기 이사님과 직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또한 이 책의 원고를 서언부터 결론까지 한 글자 한 글자 교정을 다 봐주느라 대학 마지막 방학을 내 연구실에서 지내준 우리 학교의 박찬미 제자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항상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유장희 부총장님, 김진현 장관님, 류동원 교수, 이주형 교수, 박태균 교수, 정종호 교수, 정낙근 박사, 양평섭 박사, 주펑(朱鋒) 교수, 탕스핑(唐世平) 교수, 쩡용넨(鄭永年) 교수, 왕페이링(王飛靈) 교수 등에게도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여담이지만 책도 한번 안 써본 나에게 중국 외교 60년사를 통째로 연구할 것을 독려하며 늘 도전 의식을 불어넣어 주시는 조영남 교수에게도 감사드린다.

첫 작품이기에 북경대학교 지도교수이신 량쇼우더(梁守德) 교수님과 그 가족들, 그리고 지난 1월에 작고하신 박세일 교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책을 드린다.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살아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헌신적인 집사람 노미와 아들 혁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KHU-20140104).
목차
▪ 서 언

제 1장|미중관계의 몇 가지 전제
제 2장|한국전쟁과 미중관계의 기틀 확립
제 3장|미중 고위급 접촉 개시와 중국의 이미지 개선의 모순
제 4장|베트남전쟁과 미중관계
제 5장|중소관계의 분열
제 6장|역사의 아이러니:미중관계 정상화가 문화대혁명 시기에?
제 7장|미중관계 정상화 협의와 한반도문제
제 8장|미소 데탕트와 중국의 새로운 안보 변수
제 9장|미중수교협상과 한반도문제
제10장|수교와 레이건 시기:‘허니문’과 부부싸움
제11장|부시의 중국 집착과 천안문사태:판세 역전
제12장|빌 클린턴과 장쩌민:인권, MFN과 파트너십 관계
제13장|21세기의 미중관계:부시와 중국의 핵심전략
제14장|오바마와 트럼프, 그리고 시진핑
제15장|미중의 동아시아 지역 질서 주도권 경쟁:왜 ‘동상이몽’인가
제16장|8가지의 제언
저: 주재우(朱宰佑)
주재우 교수는 현재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에 재직 중이다.
경력으로는 국가안보정책연구소(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무역협회 무역연구소(현 국제무역연구원)의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스웨덴의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2003),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2005, 2006, 2008), 조지아공대(Georgia Tech) 샘넌국제관계학원(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2011∼12)과 브루킹스연구원(Brookings Institution, 2014) 등에서 펠로우십(fellowship)을 받았다.
아시아 타임즈(Asia Times, 2002∼05), International Public Policy Review (IPP Review, 2016∼현재)와 環球時報 영문판 Global Times(2014∼현재)에 한반도문제 관련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학력으로 미국 웨슬리언대학교(Wesleyan University) 정치학 학사(1989),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석사(1994), 박사(1997)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 관심 분야는 중국대외관계, 미중관계, 북중관계, 다자안보협력 등이다. 현재 China-North Korea relations in Kim Jong-Il era, <북중관계의 오독과 현실>, China’s foreign policy and strategies 등을 집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