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문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분으로, 이익(李瀷)은 이 두 분에 이르러 우리나라 문명이 지극한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은 우리나라 도학자로 퇴계·남명 두 선생을 제일 먼저 꼽았다.
사화가 극심하던 16세기, 이 두 선생은 학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뚜렷하게 알려주신 분으로, 퇴계학은 경상좌도 안동문화권에 뿌리를 내리고 널리 전파되었으며, 남명학은 경상우도 진주문화권에 뿌리를 내리고 널리 전파되었다.
17세기 정치적인 영향으로 경상우도 지역은 학문이 침체되고 학파가 와해되다시피 되었지만, 남명학은 이 지역 사람들의 정신 속에 면면이 전승되어 학파와 당색을 불문하고 남명 선생을 사표로 삼았다. 그리하여 경상좌도에서 퇴계 선생을 모신 도산서원으로 구도적인 순례여행을 떠났듯이, 경상우도 학자들도 남명 선생을 모신 덕천서원을 도학의 원류가 흐르는 곳으로 생각해 끊이지 않고 순례를 하였다. 그리하여 경상우도 지역 학자들이 남긴 시문집을 보면 덕천서원을 순례하고 그 감회를 노래한 시편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책은 현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에 소재한 남명 선생이 말년에 은거한 산천재 등의 유적지와 남명 선생 사후에 건립한 덕천서원 등지를 순례하고 남긴 시문을 유적지별로 모아 번역한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특정 장소 중심으로 남명 선생 유적지를 순례한 사람들이 남긴 시문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후인들이 남명유적지에서 느끼는 감회를 실감할 수 있으며, 우리 선인들이 남명 선생을 얼마나 추모하고 그 정신을 본받아 계승하려 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또한 남명유적지를 찾는 사람들도 이 시문을 함께 곁들어 보면, 그 장소적 이미지와 의미가 새삼 되살아 날 것이다. 그리고 남명유적지를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경우에도 좋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