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조선시대의 쌀 문제를 연구하다가 기회가 오면 임진왜란기 참전 3국의 군량미 조달과 수송 문제로 조사의 범위를 넓혀보기로 결심하였다. 연구의 동기는 저자가 평소부터 가지고 있던 임진왜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을 밝혀보자는 데 있었다.
저자가 임진왜란에 대하여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50년대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하여서였다. 임진왜란에 대하여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된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月灘 朴鍾和의 임진왜란이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임진왜란은 6・25 직후 신문에 3년 동안 연재되었던 대하소설이다. 박종화는 6・25의 잿더미 속에서 절망에 빠져있는 한국인들에게 용기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역사소설의 대가인 월탄은 유려한 필치로 국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써나갔다. 필자는 여기서 임진왜란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었다. 역사소설은 흥미와 교훈을 얻기 위하여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交織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 철이 든 후 임진왜란에 대한 필자의 인식에 많은 의문이 생겼다. 임진년에 조선에 상륙한 소서행장의 선봉군이 1만 8천인데 4만 척의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선조가 파천하지 않았다면 한양성을 지킬 수 있었을까. 도성은 길이가 너무 길고 높이가 부잣집 담장보다 낮은데 이 성을 지키려면 몇만 명의 군사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 아닌가. 만약 선조가 몽진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었다면 조선의 운명을 어떻게 되었을까. 한양성이 함락되었다면 임금과 백관이 모두 사로잡혔을 텐데 그렇게 되면 조선은 일본군 상륙 후 20여 일 만에 멸망하지 않았을까. 임진왜란은 무능한 임금으로 알려진 선조와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다는 당시 집권 양반들만의 책임인가. 아니면 상・공업의 발전을 저해한 조선의 통치이념과 오랫동안 쌓여온 부정부패의 적폐 때문인가. 임진왜란은 7년간 계속되었는데 조선은 군량미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왜 소설에는 이 문제를 한 줄도 다루지 않았을까.
예부터 장기전에서는 군량의 조달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은 기초적인 상식이 아닌가. 동양 최고의 軍師로 받드는 제갈공명도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쟁에서 군량을 조달할 수 없어 사마중달에게 패하였고,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서 계속 밀렸으나 소하가 군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뒷받침하여 주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군량미 문제에 관한 필자의 의문은 다른 전쟁에도 연결되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달려 있고 군사력의 기반은 경제력에 의존한다는데 우리나라가 겪은 큰 전쟁에는 어째서 군량미 이야기가 없을까.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연개소문의 안시성 싸움, 김유신의 황산벌전투, 강감찬의 귀주대첩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들의 이야기만 있을 뿐 싸움에 참가한 병사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군복을 입고 싸웠는지의 이야기는 전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에 참가한 군사들을 위하여 군량미가 얼마만큼 필요한데 어떻게 조달하고 수송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없다. 소설과 드라마 뿐만 아니라 학자들의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임진왜란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논문과 저서가 1천 편이 넘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연구의 대부분은 왜란의 발생원인과 전개과정에서 본 군사적 승패와 정치적 배경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국란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인물에 대한 연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명・일의 군수물자의 조달・수송・분배 시스템에 대한 연구와 상호 비교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연구는 왜란 당시 조선・명・일본이 처해있던 경제적 상황과 정치・군사제도를 비교하여 각 국의 군수조달 시스템과 능력을 평가하는데 의의를 두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3국이 군량미를 중심으로 무기・군복 등 군수물자를 각각 어떻게 조달하고 수송하였는지를 밝히고 그에 따른 문제점이 무엇이고 이것이 전쟁의 승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비교하는 데 연구의 중점을 두었다.
壬辰倭亂은 1592~1593년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을, 丁酉再亂은 1597~1598년 일본군이 재침하여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끔 임진왜란 또는 임진란이란 명칭을 편리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 기간을 통한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연구에서 임진왜란 전후의 날자 표시는 그 당시 각종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음력으로 되어있다. 참전 3국의 연호는 서로 비교하기 쉽도록 서기로 바꾸어 표시하였다. 끝으로 이 연구를 위하여 연구비의 일부를 지원하여준 방일영문화재단과 연구장소를 제공하여준 한국고등교육재단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목차
머리말
제1장 16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조・명・일 1. 16세기 동아시아의 정세 2. 明의 국내외 상황과 동아시아 전략 3. 일본의 정세 4. 조선의 정세
제2장 임진왜란의 개황과 군량미 문제 1. 임진왜란의 시작 2. 서울의 함락과 선조의 파천 3. 명군의 참전 4. 明・日간의 강화협상과 임시휴전 5. 명・일간의 강화협상 6. 강화에 대한 조선의 입장 7. 조선의 대명 외교전 8. 강화의 결정과 책봉사의 파견
제3장 정유재란의 개황과 군량미 문제 1. 丁酉再亂의 시작 2. 명군의 재파병과 3協軍의 편성 3. 4路軍의 편성과 최후의 결전 4. 풍신수길의 사망과 왜란의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