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남명학교양총서 30 |
함안 서산서원 생육신의 충절기려 백이산 자락에 자리잡은
강동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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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문화사
종이 표지
기타
206쪽
2017년 6월 19일
9788949942810
책 소개
함안 서산서원은 생육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윤허한 최초의 서원으로 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 등이 함안 출신인 어계 조려를 비롯한 생육신의 충절을 사육신의 예에 따라 숭모처(崇慕處)가 건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창립한 서원이다. 1713년(숙종39)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다. 그 후 1902년(광무6) 서산서당으로 재건한 뒤, 1984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사육신에 대한 복관을 계기로 민절사(愍節祠)를 시작으로 숭모처가 건립되자, 어계의 고향인 함안을 중심으로 어계의 충절에 대한 숭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1701년(숙종27) 정월에 어계에 대한 포장 요청이 조정에 올라갔다. 이 해 정월 영남 유생 신만원 등이 상소하여 조려의 행적을 소개하고 원호 김시습과 같은 표양(表揚)의 은전(恩典)을 행할 것을 청하였다.

신만원 등의 상소에 대한 비답이 없자 다시 2년 후 곽억령 등이 조려의 절개가 백이숙제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단종께서 손위하던 날 죽음으로 절개를 온전히 한 사람으로 육신(六臣)이 있다면 살아서 의리를 지킨 사람으로 조려를 비롯한 여섯 명이 있다고 하면서 서산서원 건립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이 상소에서 오늘날 널리 통칭되고 있는 생육신이란 말이 생기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9년 후인 1713년에는 경상도 유생 손경장 등이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사액 서원으로서 생육신을 배향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원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그 후 서산서원은 1868년에 훼철되자 1902년 영남 사림들이 서산서당을 건립하여 향례를 봉행하고 강학의 장소로 삼아왔다. 그러다가 1980년 후손들이 서원을 복원하고자 성금을 모우기 시작하여 1981년 정부의 보조를 받아 복원을 시작하여 1984년 완공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서산서원은 우리나라 충절신을 배향하는 대표적인 서원으로의 역사성이 뚜렷한데도, 현재는 연 1회 정도의 제향 공간으로서의 역할 외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산서원의 역사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어계를 비롯한 생육신의 충절을 알리는 평생교육의 장으로서 활용이 시급하다고 본다. 시민교육 즉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함안의 선비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함안군과 생육신 문중, 그리고 함안 군민들이 어계의 충절로 대표되는 함안 선비 문화의 자긍심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할 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목차
1. 함안 서원을 찾아서
2.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 운동
3. 「육신전(六臣傳)」을 지어 충절을 전하다.
4. 단종 묘소에 제사를 봉행하다.
5. 단종과 충신들의 복권 공론화
6. 단종의 충신들을 복권하다.
7. 생육신의 등장
8. 생육신에 대한 포장
9. 드디어 서산서원이 창건되다.
10. 서산서원 배향인물
11. 1713년 사액서원이 되다.
12. 서산서원 훼철과 서산서당 건립
13. 서산서원의 공간구성
14. 서산서원 제향
저: 강동욱
진주 출생으로 경상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상대학교 한문학과와 진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강사. 경남일보 문화부장과 문화전문기자를 역임했다. 현재 경상남도 문화재 전문위원이며,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서 「금강산 유람록」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남명의 숨결』 『수우당 최영경』 『역주 교방가요』 『교방의 풍류와 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