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한국학연구총서 152 |
고려후기 정치사
김창현 저
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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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문화사
양장
152*224mm(A5신)
530쪽
2017년 11월 27일
9788949943183
책 소개
고려시대는 한국사에서 중세에 해당한다. 한국의 중세는 통일신라부터 조선까지 잡을 수도 있지만 고려가 한국사에서 가장 중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태조 왕건이 궁예왕을 이어 고려를 재건 내지 개창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이 갈등을 겪으면서 조화를 이루어 가고, 문반과 무반의 분화가 진행되면서 갈등과 조정을 거쳐 나갔다. 정치체제도 시기에 따라 신라의 관제, 궁예 태봉의 관제, 중국의 관제, 몽골의 관제를 도입해 고려에 맞게 수용해 나갔다.

고려시대를 전기와 후기, 두 시기로 구분할 때 통상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한다. 무신정변 이전은 고려전기, 이후는 고려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조선초기에 편찬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이렇게 명시적으로 드러내 구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인식이 담겨 있어 후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고려와 그 이후의 고려를 달리 본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무신정변 이전은 밝은 시기인 반면 이후는 어두운 시기였다는 인식은 문제가 많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이것을 편찬한 조선초 儒者의 시각이 담겨 있다. 즉 이것은 유학 내지 유교의 입장에서 고려사를 정리한 것이었다. 그러하니 무신이 지배한 무신정권기, 실용적인 능력이 중시된 원간섭기,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무장이 권력을 차지한 공민왕~공양왕기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렇게 보면 고려후기는 암흑기가 되어 버린다.

고려후기는 진정 암흑기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어두운 측면도 있었지만 역동적인 변화를 통한 발전의 측면이 훨씬 더 많았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고려의 제도와 문물은 11세기 후반 문종 때 완성되었지만 이후 계속 보완을 거쳐 발전해 나갔다. 여진정벌 실패와 묘청정변 실패로 인해 문치주의가 지나쳐 무신정변이 일어나 무신정권이 성립해 문무의 소통이 추진되었다. 무신정변 이후 고려의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역동적으로 확 바뀌므로 발전적인 시각에서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삼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 것은 타당하다.

조선 유교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 때문인지, 5.16 군사정변과 군사정권을 폄하하는 시각이 존재해서 그런지, 고려 무신정권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민이 주인이 아닌 전근대 왕조시대에서, 정치가 왕권과 중앙집권이 강하다고 좋게 행해지는 것만은 아니었고, 문신이 집권하면 잘 된다거나 무신이 집권하면 잘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고려 무인정권기는 무려 100년 동안 유지된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역사에서 임금과 집권자가 권력의 공유 내지 분점을 실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원간섭기 고려는 몽골 원의 내정간섭과 공물수탈로 시달린 측면이 있다. 하지만 권력이 여러 곳에서 나오면서 합의를 찾아가는 정치체제를 만들어갔다는 점, 몽골 원이 고려국을 없애 한 지방으로 만들려는 합병 시도를 끝내 극복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민왕의 개혁은 실패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1356년(공민왕 5년)의 개혁으로 85년가량의 몽골 지배에서 벗어나고 쌍성총관부 관할 지역을 수복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었다. 또한 홍건적을 격퇴하고 미천한 출신의 신돈을 등용해 과감한 민생개혁을 단행한 것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우왕대 정치도 왜구의 집요한 침략을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한족 명과 몽골 북원 사이에서 균형과 중립의 외교를 추구하고 명의 고려영토 약탈 시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는 점은 평가해 주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고려후기 정치사를 다룬다. 제1장에서 제4장까지는 무인정권기를 주제로 한 것인데, 제1장과 제2장에서는 무인정권의 성립 및 변화와 집권자의 위상을, 제3장에서는 집권자의 집 경영과 정치의 관계를, 제4장에서는 대몽항쟁기 피난수도였던 江都의 공간구조와 궁궐이 어떠했는지를 고찰하려 한다. 제5장부터 제9장까지는 원간섭기를 포함한 고려말기를 주제로 한 것이다. 제5장에서는 고려국왕과 몽골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군주 충선왕에 대해 고찰하고, 제6장에서는 고려말기 금강산 신앙의 유행과 정치적 배경을 금강산보살도를 키워드로 조명하려 한다. 제7장에서는 공민왕 때 신돈정권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제8장과 제9장에서는 고려말기 정치를 이끈 도평의사사와 별청재추․내재추의 추이와 성격을 규명하려 한다.

충선왕에 대해서는 혼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자칫 오해를 살까 염려된다. 그는 고려 국왕 충렬왕과 몽골 제국대장공주 사이에서 태어나 고려궁주 소생인 형을 제치고 세자를 거쳐 왕위에 올랐다. 나는 2009년 한국중세사학회 학술대회에서 충선왕에 대해 발표하면서 ‘혼혈왕자’, ‘혼혈군주’라는 용어를 써서 논란을 맞은 적이 있다. 나는 결코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고 순수혈통주의자도 아니다. 한국사 연구자들이 충선왕에 대해 자주적인 개혁을 추진했다느니 하면서 이상적인 고려군주로 너무 미화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에 대한 충격요법으로 충선왕이 고려국의 이익만 대변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혼혈’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충선왕은 절반은 고려인, 절반은 몽골인이었다. 원간섭기 고려의 국정혼란과 재정파탄은 거의 다 그로 인해 초래되었다. 그는 조상 중에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과 세계제국을 건설한 칭기스칸 중에 누구를 더 자랑스러워했을까? 중국까지 지배하며 원 제국을 건설한 외조부 쿠빌라이칸과 대칸에 오르기 전의 쿠빌라이를 찾아가 항복한 조부 원종 중에 누구를 더 자랑스러워했을까? 그는 고려국왕 복위기와 상왕으로 實權을 행사한 시기의 대부분을 원에 머물며 보냈다.

고려후기는 여러 모양의 정치형태가 나타나 역동적인 사회 변동과 조응하며 자리잡아 갔다. 무인정권기와 원간섭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하고 실용적인 정치운영이 모색되었다. 고려 후기, 특히 말기의 정치는 사회․문화와 더불어 중층적이고 복합적이어서 너무 단선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인문학이 인기가 적고 특히 전공서적이 그러하고 게다가 전자책이 선호된다. 그러함에도 이 저서를 종이책으로 간행하도록 허락해준 경인문화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목차
제1장 고려 무인정권의 성립과 집권자의 위상
머리말
1. 이의방~정중부 정권과 집권자의 위상
2. 경대승~이의민 정권과 집권자의 위상
맺음말

제2장 고려 무인정권의 변화와 집권자의 위상
머리말
1. 중기 무인정권과 집권자의 위상
2. 말기 무인정권과 집권자의 위상
맺음말

제3장 고려 무인정권기 집권자의 私第와 정치
머리말
1. 초기 실력자의 私第 경영
2. 최충헌과 최우의 私第와 정치
3. 江都의 최우 私第와 진양부
4. 집권자 私第 정치의 쇠락
맺음말

제4장 고려 江都宮闕의 위치와 운영
머리말
1. 궁궐관련 용어 문제
2. 강도의 공간구조와 궁궐
3. 강도 본궐의 위치 추적
4. 강화 궁궐의 특징
맺음말

제5장 충선왕의 탄생과 결혼, 그리고 정치
머리말
1. 혼혈왕자의 탄생과 도전
2. 혼혈왕자의 결혼
3. 혼혈군주에서 세계군주로
맺음말

제6장 고려말기 금강산 신앙과 정치
머리말
1. 금강산 신앙의 유행
2. 노영 금강산보살도의 이해
3. 원간섭기 금강산 사원과 정치
맺음말

제7장 고려말 신돈정권의 성립과 구성
머리말
1. 신돈정권의 탄생
2. 신돈정권의 구조
맺음말

제8장 고려후기 都評議使司 체제의 성립과 발전
머리말
1. 都兵馬使의 都評議使司로의 개칭 배경
2. 都評議使司 체제의 성립
3. 式目都監의 부상과 都評議使司의 위상 약화
4. 도평의사사 체제의 발전
5. 도평의사사의 운영
맺음말

제9장 고려후기 別廳宰樞와 內宰樞
머리말
1. 內宰樞의 유래와 범주
2. 충렬왕대의 別廳宰樞
3. 공민왕・우왕대의 內宰樞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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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창현
제주에서 나고 자람.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음.
성균관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함.
대표적 논저로 <고려 개경의 구조와 그 이념>, <고려의 남경, 한양>, <고려의 여성과 문화>,
<고려 개경의 편제와 궁궐>, <고려의 불교와 상도 개경>, <고려 도읍과 동아시아 도읍의 비교연구>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