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현대사 자료총서 4 |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제2분과위원회 보고서 한국 축 요인 면담 기록(1948.1.26.~3.6)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편저; 허동현, 김재웅 저 외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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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문화사
종이 표지
B5(4x6배판)
420쪽
2018년 12월 20일
9788949947822
책 소개
2015년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중점연구소로 선정된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은 2년 동안의 연구 성과물로 『한국문제 관련 유엔문서 자료집(1948~1949)』(상·하)(2017)와 『한국전쟁 관련 유엔문서 자료집』(1~3)(2018), 총 5권을 발간한 바 있다. 본 자료집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제2분과위원회 보고서 -한국 측 요인 면담 기록-』은 ‘유엔과 한국문제’에 초점을 맞춘 본 연구원 중점과제의 세 번째 성과물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이 1948년 5·10 선거에 관한 자신들의 활동을 기록한 보고서[원제: First part of the report of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VolumeⅢ(1948), 약칭 A/575/Add.2]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부속문서 일부
(Annex X, XI)를 완역한 것이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하 임시위원단)은 1947년 11월 14일 제2차 유엔총회의 결정으로 조직되었다. 통일임시정부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한국문제’는 미국의 제안으로 유엔에 이관되었다(1947.9.17). 이어서 미국, 소련, 중국, 영국의 4개국 회담에 한반도 통일문제를 상정하려는 시도가 소련의 반대에 직면하자 미국은 임시위원단의 파견을 통한 통일(임시)정부 수립 지원이라는 해결방안을 제시했고 총회의 승인을 얻게 되었다.
1948년 1월 서울에 도착한 임시위원단은 남한의 정치지도자들과 협의하는 한편, 북한 측 정치지도자들과도 접촉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총선거를 위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조성은 순조롭지 못했을 뿐더러 위원단의 북한 지역 진입이 거부되는 등 현지에서의 임무수행은 난관에 봉착했다. 더 이상의 필요한 조치를 찾기 어려웠던 임시위원단은 유엔소총회와의 협의를 통해 향후의 활동방향을 모색하였고 마침내 ‘임시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 즉 남한에서의 총선거 실시라는 유엔의 결정을 통보받았다. 그 후 임시위원단은 총선거 실시 감독의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 보고서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이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접근 가능 지역에서 실시된 총선거를 통해 수립된 합법정부임을 승인하는 근거가 되었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 활동 보고서가 해방 후 한국현대사 연구의 기초사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다.
임시위원단이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5·10선거를 전후로 하여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제1부, 1948년 1월 12일부터 5월 24일까지의 활동내용에 관한 기록(First part of the report of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Vol.1~3)이고 둘째는 제2부, 5월 25일부터 10월 14일까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의 활동 요약(Second part of the report of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Vol.1~2)이다. 1965년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이 번역·발간한 『1948년도 국제연합한국임시위원단 보고서』는 바로 이 보고서
제1부 제1권(Vol.1)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관련하여 유엔 및 임시위원단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촉발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제1권의 내용이 임시위원단의 창설과정, 위원단의 권한 및 조직구성, 한국의 정치상황 등 주로 위원단 조직 자체와 그 환경에 관한 사실들이라면, 제3권은 임시위원단이 남한지역에서 실제로 수행한 임무와 활동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것으로, 그 가운데 본 자료집은 총선거를 둘러싼 한국인의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부분(Annex 10,11)을 전문 번역한 것이다. 제3권의 전체 구성은 “자유로운 선거분위기에 관한 인터뷰 및 구술기록”(A575/Add.2, Annex 9), “한국 측 요인에 대한 인터뷰 및 구술 기록”(A575/Add.2, Annex 10), “남북한의 선거법 및 선거규칙에 대한 요인들의 견해”(A575/Add.2, Annex 11),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선거감시반의 1948년 5·10 선거에 대한 관찰 기록”(A575/Add.2, Annex 12)의 4가지 부속문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문서들이 2월 하순경부터 3월 초에 걸친 짧은 시일 내에 작성될 수 있었던 것은 임시위원단 산하에 설치된 3개 ‘분과위원회(sub-committee)’와 ‘선거감시단’의 체계적인 역할 분담과 신속한 활동의 결과였다.
첫째, 자유로운 선거분위기 보장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임무를 맡은 제1분과위원회는 미군정의 임시위원단 연락 장교 웨커링(John Weckerling) 준장(1948.2.19), 주한 미 군정장관 윌리엄 딘(William F. Dean) 소장(1948.2.24~3.5), 미군정 특별고문 퍼글러(Dean Charles Pergler)와 프랑켈(Ernest Fraenkel) 박사(1948.2.26), 주한 미군 사령관 하지(John R. Hodge) 중장(1948.3.3) 등 미군정 인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자유로운 선거 실시의 가능성 여부에 관련된 치안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사정과 당면 문제점, 선거관련 한국의 기존 법규와 미군정 법령 등을 조사했다.
둘째, 제3분과위원회는 남북한의 선거법 및 규정을 검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인터뷰를 통해 유권자와 후보자의 연령 제한, 부적격자의 자격 제한에 관한 남북한 법률 조항의 차이, 부일협력자의 선거 참여 문제, 문맹자의 투표권, 국회의원 정족수 등에 관한 견해를 조사하였으며 그 결과를 답변자의 좌, 우, 중도의 정치성향별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셋째 ‘선거감시단’은 선거과정을 유권자 등록(1단계 : 1948.4.5~10), 후보자 등록 (2단계 : 1948.4.19~24), 투표(3단계 : 1948.5.7~11)의 세 단계로 나누어 선거감시활동을 전개하기로 하였고, 지역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과 지방단체장, 입후보자, 지역유지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거등록 현황과 후보자들의 정치성향, 전국에 걸친 선거 분위기와 투개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본 자료집의 보고서를 작성한 제2분과위원회는 1948년 1월 17일, 임시위원단 제5차 회의의 결정에 따라 설치되었다. 잭슨(S.H. Jackson, 호주 대표)을 위원장으로 호주, 중국, 프랑스, 필리핀, 엘살바도르 대표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선거 실시 및 위원단의 역할과 관련하여 한국의 개인 및 정치·종교·문화 단체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제2분과위원회는 1948년 5월 10일까지 개인들로부터 278통, 각종 기관으로부터 498통(지역 기준으로는 서울의 기관 및 개인으로부터 478통, 그 외 남한 전 지역으로부터 298통), 모두 776통의 서신을 접수했다.
뿐만 아니라 균형 있는 여론 수렴을 목적으로 우익, 중도, 좌익 인사 대표, 그리고 정치와 무관한 단체의 대표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고자 했다.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견해를 골고루 듣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으나 북한 측 지도자들과의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이를 보완하고 균형 잡
힌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허성택(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위원장), 허헌(남조선노동당 당수), 김원봉(인민공화당 당수), 백용희(전국농민조합총연맹 위원장), 유영준(조선부녀총동맹 위원장) 등 좌익단체 지도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이 또한 위원회 활동 자체에 대한 반대, 그리고 인터뷰에 응할 경우의 신변보장 문제를 제기해 옴에 따라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제2분과위원회의
인터뷰는 이승만(대한독립촉성회), 김구(한국독립당), 김규식(과도입법의원), 김성수(한국민주당), 안재홍(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 조병옥(경무부장), 장건상(근로인민당), 여운홍(사회민주당), 그리고 재계, 종교계, 사회단체의 대표, 마을 이장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따라서 제2분과위원회의 보고서가 한국인 전체의 여론을 균형 있게 대변한 것인지의 여부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제2분과위원회는 인터뷰를 실시한 남한지역에서는 적어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 분위기, 모든 단체와 정당들의 차별 없는 표현, 집회 및 출판의 자유, 정치범 현황, 남한의 경찰에 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임시위원단은 제30차 회의(1948.3.31)에서 제1·제3 분과위원회와의 협조하에 검토를 마친 후에 제2분과위원회의 최종보고서를 채택하였다. 특히 1948년 1월 26일부터 3월 6일까지 제2분과위원회가 실시한 한국 측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 기록은 총선거 실시에 관한 한국 여론에 관한 보고서로, 한국문제에 관한 유엔총회 및 소총회의 협의석상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하도록 위원장에게 제공되었다.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 승인의 판단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자료인 만큼, 관련 주제의 연구 진전에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발 간 사 7


X. 제2분과위원회 면담 및 구술 기록

1. 제5차 회의 요록(1948.1.26)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이승만
2. 제6차 회의 요록(1948.1.26)
: 한국독립당 김구
3. 제7차 회의 요록(1948.1.26)
: 중도좌파단체 대표
4. 제8차 회의 요록(1948.1.27)
: 과도입법의원 김규식
5. 제9차 회의 요록(1948.1.27)
: 월남민 목사 한경직, 사회민주당 여운홍
6. 제11차 회의 요록(1948.1.28)
: 한국민주당 김성수
7. 제12차 회의 요록(1948.1.29)
: 조선인권옹호연맹 조평재, 여성단체총협의회 황애덕
8. 제13차 회의 요록(1948.2.2)
: 민정장관 안재홍
9. 제14차 회의 요록(1948.2.2)
: 대법원장 김용무, 경무부장 조병옥
10. 제15차 회의 요록(1948.2.3)
: 근로인민당 장건상
11. 제16차 회의 요록(1948.2.7)
: 주한미주둔군사령관 하지
12. 제21차 회의 요록(1948.2.19)
: 서울교구 주교 노기남
13. 제23차 회의 요록(1948.2.25)
: 조선상공회의소 회장 이동선, 조선상공회의소 부회장 전용순, 조선은행 총재 최순주,
서울대학교 총장 이춘호
14. 제24차 회의 요록(1948.2.27)
: 서울타임스 사장 민원식, 천도교청우당 사무총장 김병순, 천도교청우당 고문 이응진
15. 제25차 회의 요록(1948.2.27)
: 민주한국독립당 권태석, 과도입법의원 산업노동위원회 박건웅
16. 제26차 회의 요록(1948.3.2)
: 양평군 옥천면장 함운동
17. 인터뷰 요록(1948.2.20)
: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의장 허성택


XI. 선거법과 선거규정에 관한 한국인들의 여론 요약
편저: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저: 허동현
경희대학교
저: 김재웅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한국현대사 전공
저: 김재호
경희대학교
저: 안소영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한국정치외교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