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불교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사회였다. 불교는 사상과 종교의 측면에서는 물론 건축이나 미술의 영역에서, 또 공연 예술의 분야에서도 상당한 자취를 남겼다. 그리고 불교계는 국가 경영이나 지방 행정 운영과도 깊이 관련하고 있었다. 수준 높은 불교문화의 바탕에, 또 광범위한 불교 영향력의 배후에 사원경제가 자리했다. 사원경제의 확대는 국가재정을 축소시키고, 세속 지배층의 경제력 위축을 가져오는 것이어서 국가 및 지배층과 일정한 긴장 관계를 보이기 마련이었다. 문명사적으로 보면 사원경제에는 外風과 土風이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외래 문명으로 이 땅에 수용된 것이기 때문에 외풍이라 부를 수 있는 반면에, 경제 기반은 우리 사회를 전제로 하므로 토착적인 측면이 강하다. 결국 외래 사상인 불교가 이 땅에 들어와 토착의 기반사회 및 경제구조를 전제로 해서 사원경제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겠다.
승려들은 수행 과정에서, 또 승직을 담당하기 때문에 전국을 이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불교계는 전국적 연결망(network)을 형성하고 있다. 이 연결망은 불교 교설의 확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온갖 문물의 전국적 소통에 이바지했다. 이 점 역시 고려시기 불교계의 주목할 사항이라고 하겠다. 연결망의 측면에서 불교계의 역할을 해명하는 것은 우리 불교, 나아가 사회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상의 시각을 전제로 작업한 내용을 저자는 일부 발표했고 그것을 이 책에 수록했다.
본서는 저자가 발표한 14편의 논문과 새로 작성한 한 편의 글을 수록했는데, 사원경제를 주제로 하면서 다소 외연을 확대해 작성한 글까지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기존의 연구에서 주목하지 않은 주제라든지 언급하지 않은 내용을 여럿 포함하고 있다. 본서가 고려시기 사원경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불교계 전반에 대해 폭 넓게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