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이 땅의 문화계에서 조선 제1의 여자 연극배우로 평가받던 김복진이 오늘 날 국내 연극사에서는 거의 기억되지 않고 있다. 연극사에 관한 서적에도 김복진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추측하여 본다.
첫째, 그가 연극배우였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연극사는 주로 작가와 희곡을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으며, 배우에 대한 정리와 설명은 별로 없었다. 이는 연극이라는 속성에서 기인하는 바도 크다. 작품은 활자로 남으며, 작가는 작품을 통해 기억되는데, 배우는 공연이 끝나면 관객의 기억 속에만 남을 뿐이다. 영화의 경우 필름이 남아 후대에도 과거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지만 연극은 이 또한 불가능하다. 기록으로 남는 것은 평론가의 연극평 중 연기자에 관한 간단한 언급뿐이다. 이나마 후대의 사람들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 간접경험에 불과하다. 결국 연극배우는 동시대를 지나면 급격히 잊혀질 숙명을 지니고 있다.
김복진이 기억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연극활동이 1930년대에 한정되었다는 점이다. 김복진과 함께 활동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 말 전시체제 속에서 친일극에 참여하는 등 연극활동을 계속했다. 이들은 광복 후에도 국내 연극 재건의 주축이 되어 연극인으로서의 삶을 계속하고 후대에도 영향을 미치었다. 광복 후 한국 연극은 서항석, 유치진, 이해랑, 김동원, 이진순 등 극예술연구회 출신에 의해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 이들은 연극사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가 용이했다. 반면 같은 극연 출신이나 1939년을 끝으로 연극 활동을 중단하고 1950년에 사망한 김복진은 후대와 이러한 연결고리를 갖지 못했다. 이에 그를 직접 보지 못하고 광복 후 학문적으로 연극사를 서술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기 어려웠다.
이후 김복진이란 이름은 국내 연극계에서 조용히 그리고 거의 완벽하게 잊혀졌다. 그는 오직 1930년대 그와 연극운동을 같이 했던 서항석, 유치진, 김광섭, 윤석중, 김동원 등이나 개인적으로 가까이 지내던 여류인사 황신덕, 최정희, 모윤숙, 문예봉 등의 아련한 기억 속에만 묻혀져 버렸다. 현재는 이 모든 사람들도 타계해 그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