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한국학연구총서 166 |
조선후기 경상우도의 학술동향
최석기 저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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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문화사
종이 표지
152*224mm(A5신)
472쪽
2019년 7월 31일
9788949948249
책 소개
광해군 때 집권세력이었던 북인정권에는 남명학파가 다수 참여하였다. 그러니까 광해군 대에는 남명학파가 정치의 주도권을 행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623년 인조반정으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남명의 문인으로서 북인정권의 영수 격이었던 정인홍(鄭仁弘)이 폐모살제(廢母殺弟)의 강상죄를 범한 죄인으로 처형이 되자, 남명학파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윤리적으로도 용납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억울한 마음에 재기를 도모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번째가 정인홍과 자신들은 다르다는 거리두기를 통해 변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상당수의 인사들이 자신들은 정인홍과 별 관련이 없고, 설령 친분이 있더라도 일찍이 절교하여 차별화하였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남명학파 내부의 분열이다. 남명학파의 분열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남명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나타난 이견, 남명학파가 속했던 북인정권의 몰락, 새로운 당색을 갖지 않고서는 사대부로서의 존립기반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 남명의 학맥이 뚜렷하게 전승되지 못하고 몇몇 가문의 가학을 통해 전승된 점, 17세기 후반 서인과 남인의 당쟁 속에서 자기위상을 정립하기 어려웠던 점, 18세기 이후 경상우도 지역의 학술적 침체로 인한 사상적 기반의 와해 등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2세기 동안은 경상우도 지역의 학술이 매우 침체되었고,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세력을 잃어 적막하고 쓸쓸하여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는 남인화 하거나 노론화 하여 자기 존재기반을 찾으려 하였고, 학술적으로 퇴계학파의 학맥에 나아가 배우거나 기호학파의 학맥에 나아가 배우게 되었다.
그러다 19세기에 중반에 이르러 경상우도 지역에도 서서히 학문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경상도 지역에는 퇴계학통의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 1777~1861)이 큰 학자로 중망을 얻고 있어서 각지의 수재들이 그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경상우도 지역 학자들도 상당수 그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여 경상우도에 정재학단(定齋學團)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학자는 없었고, 단지 학문적으로 그 설을 추종하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경상우도 지역에는 새로운 동향이 대두되었다. 유치명에게 수학한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이 노론계 기호학파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설을 이론적으로 비판하면서 학술적 대응을 하였고, 또 퇴계의 설과 다른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펴서 새로운 성리설을 전개하였다. 이진상이 성주(星州)에서 강학을 하자, 학술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경상우도 지역 학자들이 대거 그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여 한주학단(寒洲學團)이 형성되었다.
또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학통을 계승한 성재(性齋) 허전(許傳, 1797~ 1886)이 김해부사로 내려오자 경상우도 지역 인사들이 대거 그의 문하에 나아가 성재학단(惺齋學團)이 형성되었다. 허전은 근기 남인계를 대표하는 학자였는데, 근기 남인계는 광해군 대 북인정권에 출사한 사람이 많았고, 또 경상우도 지역 인사들과 세교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당시 경상우도 남인계의 당색을 갖고 있던 집안의 학자들은 근기 남인계와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 그리하여 허전의 문하에 대거 나아가 배운 것이다.
또한 이 시기 경상우도 인사들은 남인 또는 노론의 당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당색이 전에 비해 상당히 퇴색되었다. 그리하여 남인계에 속했던 사람들 중에도 노론계의 당색을 가진 전라도 장성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하에 나아가 배우는 사람이 있었다.
경상우도 지역은 약 2세기 가까이 학술이 극도로 침체되었기 때문에 학술이 새롭게 부흥하는 분위기에 맞추어 이 지역 노론계 집안 또는 남인계 인사들 중에도 새로운 학설을 주창하며 지방에서 큰 학자로 소문이 난 기정진의 문하에 나아가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경상우도 지역에도 노사학단(蘆沙學團)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 이후 경상우도 지역에는 학술이 새롭게 일어나는 분위기 속에서 정재학단, 한주학단, 성재학단, 노사학단 등이 뚜렷하게 학문집단을 형성하여 활발하게 학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외에도 이 지역에는 가학을 통해 독자적으로 학문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 남명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여 당색이나 학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상호 교유하였다.
이들 중에는 자기 학파의 설을 고수하는 학자도 있었지만, 종래의 설만을 고수하지 않고 통섭의 시각에서 새로운 설을 제기하면서 활발한 학술활동을 하였다. 예컨대 이 지역 남인계 학자들은 남명과 퇴계를 동등하게 존숭하여 남명학과 퇴계학을 융합하는 학풍을 조성하였고, 노론계 학자들은 남명학과 율곡학을 융합하는 학풍을 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정재학단에 속한 학자들은 남명학과 퇴계학을, 한주학단에 속한 학자들은 남명학과 한주학을, 성재학단에 속한 학자들은 남명학과 성재학을, 노사학단에 속한 학자들은 남명학과 노사학을 학문적 토대로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학술사에서 매우 주목해 볼 만한 사안이다. 이는 안동권 퇴계학파에서 퇴계학만을 고수하는 것과 다르고, 기호학파에서 율곡학 또는 우암학만을 고수하는 것과 다른 성향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상사 속에서 이러한 성향이 구체적으로 검증되어 변별적으로 드러내 밝힐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들이 비록 실학사상이나 개화사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성리학적 내부에서 현실세계의 변화에 대응하여 사상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려 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틈틈이 연구한 것을 묶어 19세기 중반 이후 경상우도 지역의 학술동향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었는지, 그것이 다른 지역 학술동향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 간행하게 되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이 시기 이 지역의 학술동향이 더 구체적으로 밝혀져서 조선후기 사상계가 경상우도 지역에서 다양하고 활발하게 활동한 것이 새롭게 인식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에 소개한 학자들의 성향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세기에 활동한 의령 출신 안덕문(安德文)은 당시 고착화된 학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영남의 정신문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립하려고 했던 학자이다. 그는 영남의 문화가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조식(曺植)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보고서 그분들을 제향하는 세 서원을 삼산서원이라 명명하고, 세 분의 학문을 통섭적으로 수용하려고 한 지식인이다.
진주 출신 하익범(河益範)은 남명학을 토대로 하면서 기호의 우암학맥에 나아가 배운 인물로 남명학과 우암학을 겸취한 인물이다.
박치복(朴致馥)은 함안 출신으로 삼가에 주로 살면서 19세기 중반 이 지역의 학술부흥을 주도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는 유치명에게 수학하고, 후에 허전에 수학한 학자로서 성리설을 많이 전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성향은 남명학과 퇴계학과 성호학을 겸취한 인물이다.
삼가에 살던 정재규(鄭載圭)는 기정진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여 기정진의 성리설을 경상우도에 전파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경상우도 노사학단의 대표적인 인물이 조성가(趙性家)・최숙민・정재규라고 할 수 있는데, 노사학을 전한 인물로는 단연 정재규를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정재규는 최익현(崔益鉉)과 의병을 함께 일으키기로 한 인물이기도 하다.
진주 출신 강병주(姜柄周)는 일찍이 한양으로 가서 허전의 문하에서 배워 성재학단의 일원이 된 인물이다. 그는 남명학과 성재학을 학문적 토대로 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진상의 문인으로 이진상의 성리설을 계승하여 이 지역에 큰 학문집단을 형성하고, 이진상의 설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학파의 학자들과 적극적인 학술논쟁을 한 인물이 곽종석(郭鍾錫)이다. 그러니까 곽종석은 스승 이진상의 학문을 계승한 적통이라 할 수 있으며, 경상우도 지역에 그 학문을 널리 전한 중요한 인물이다. 곽종석은 남명학과 퇴계학을 겸하면서 한주학을 토대로 한 인물이라 하겠다.
김진호(金鎭祜)는 남인계 인물로 허전에게 수학하였으며, 이진상의 설도 일정하게 수용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곽종석과 치열하게 학술논쟁을 하면서 이진상의 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퇴계의 설에 기반을 하여 반론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김진호는 남명학과 퇴계학을 겸취한 인물이라 하겠다.
김황(金榥)은 곽종석의 문인으로 한주학단에 속한 인물이라 하겠으나, 그의 경학십도(經學十圖) 등을 보면 사설(師說)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독자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거론한 8명의 인물들은 각기 학문적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조선후기 경상우도 지역의 학술동향을 살피는 데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선별하여 학문과 문학과 사상을 살펴본 것이다. 이 외에도 독특한 자기의 설을 편 학자들이 다수 있을 것인데, 이런 학자들에 대해서는 이 책을 계기로 더 폭넓고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안덕문(安德文)의 학문정신과 처세방식
Ⅰ. 머리말
Ⅱ. 자기성찰과 통섭학문 추구
1. 시대적 환경과 인식의 전환
2. 통섭의 영남학 지향
Ⅲ. 함양자수(涵養自守)의 실천적 학문
1. 잠명(箴銘)과 도설(圖說)을 통한 심성수양
2. 「명명덕잠(明明德箴)」에 나타난 도덕적 주체 확립
3. 「구용잠(九容箴)」에 나타난 자수실천(自守實踐)
Ⅳ. 일상에서 의(宜)를 행하는 처세방식
1. 나의 마땅함[宜] 찾기
2. 고을 학문 일으키기
3. 고을 민생 살리기
4. 고을 명승의 의미 발굴
Ⅴ. 맺음말

제2장 안덕문의 삼산서원(三山書院) 위상정립과 그 의미
Ⅰ. 문제의 소재
Ⅱ. 안덕문의 생애와 학문성향
1. 가계 및 지취
2. 학문성향
Ⅲ. 삼산서원 위상정립 및 표장
1. 삼산서원의 명칭과 위상정립
2. 표장을 위한 노력과 영남사림의 반응
Ⅳ. 맺음말

제3장 하익범(河益範)의 삶과 문학
Ⅰ. 머리말
Ⅱ. 생애와 삶의 지취
1. 생애
2. 삶의 지취
Ⅲ. 기행문학 작품 개관
1. 기행시
2. 기행문
Ⅳ. 산수기행 시문에 나타난 작가의식
1. 인지지락(仁智之樂)에로의 심취
2. 원두처(源頭處)를 향하는 구도의식
3. 역사에 대한 회고
4. 남명정신의 환기
Ⅴ. 맺음말

제4장 박치복(朴致馥)의 남명학 계승양상
Ⅰ. 머리말
Ⅱ. 19세기 강우지역의 학술동향과 박치복의 학문성향
1. 19세기 강우지역의 학술동향
2. 박치복의 학문성향
Ⅲ. 박치복의 남명학 계승양상
1. 남명유적 탐방 및 추숭사업
2. 남명의 문묘종사를 위한 노력
3. 󰡔기언(記言)󰡕의 산삭개정 요청과 󰡔남명집󰡕 중간을 위한 노력
4. 현실인식의 측면에서 본 남명정신 계승
5. 남명에 대한 인식 및 논평
Ⅳ. 맺음말

제5장 강병주(姜柄周)의 학문과 문학
Ⅰ. 머리말
Ⅱ. 생애와 학문
1. 생애와 인물성격
2. 현실인식과 현실대응
3. 학문의 성향과 특징
Ⅲ. 시세계
1. 개관
2. 특징
Ⅳ. 맺음말

제6장 정재규(鄭載圭)의 학문정신과 󰡔대학󰡕 해석
Ⅰ. 머리말
Ⅱ. 현실인식과 학문정신
1. 수사선도의식(守死善道意識)과 독서종자양성론(讀書種子養成論)
2. 학문방법과 독서론
Ⅲ. 󰡔대학󰡕 해석의 특징
1. 󰡔대학󰡕 해석의 기본관점
2. 󰡔대학󰡕 해석의 특징
Ⅳ. 맺음말

제7장 김진호(金鎭祜)의 학설에 대하여
Ⅰ. 머리말
Ⅱ. 주요학설 개관
1. 성리설(性理說)
2. 예설(禮說)
3. 경설(經說)
4. 기타의 설
Ⅲ. 결어

제8장 곽종석(郭鍾錫)의 명덕설(明德說) 논쟁
Ⅰ. 머리말
Ⅱ. 문제의 소재와 논쟁의 발단
1. 문제의 소재
2. 논쟁의 발단
Ⅲ. 논쟁의 전개
1. 허유(許愈)와의 논쟁
2. 김진호(金鎭祜)와의 논쟁
Ⅳ. 맺음말

제9장 김황(金榥)의 경학십도(經學十圖)에 대하여
Ⅰ. 김황의 학문적 성과
Ⅱ. 경학십도(經學十圖) 개관
Ⅲ. 소학도(小學圖)와 사서도(四書圖)
1. 소학도(大學圖)
2. 대학도(大學圖)
3. 논어도(論語圖)
4. 맹자도(孟子圖)
5. 중용도(中庸圖)
Ⅳ. 오경도(五經圖)
1. 시경도(詩經圖)
2. 서경도(書經圖)
3. 주역도(周易圖)
4. 춘추도(春秋圖)
5. 예도(禮圖)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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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최석기
1954년 강원도 원주 출생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졸업
동 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문학박사
한국고전번역원 연수부, 상임연구원 졸업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실 전문위원
현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교수

『성호 이익의 학문정신과 시경학』
『한국경학가사전』
『나의 남명학- 읽기』
『남명정신과 문자의 향기』
『남명과 지리산』
『조선시대 대학도설』
『조선시대 중용도설』
『조선시대 선비의 마음공부, 정좌』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