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그 당시 제주에 거주했던 일본인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에 살았던 일본인은 외국인으로서의 일본인이 아니다. 당시에는 일본인은 ‘내지인’, 조선인은 ‘조선인’ 또는 ‘반도인’이라고 했다. 주객이 전도된 명명이다. 이들은 이주한 나라의 생활풍습을 따르지 않고 조선에서 일본식 집을 짓고 일…
한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지역에서 간행된 한글신문들을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한인언론 100년사를 다루면서 주로 한인들의 민족운동에 주목하였으며, 항일독립운동 시기인 한말부터 1922년 러시아 내전이 끝나는 시기까지에 더욱 비중을 두고 서술되었다.
만회선생이 자손들에게 전하는 십자훈인 구시의 정신과 더불어 논어, 맹자, 근사록 등 경서를 중심으로 僭疑의 뜻을 전하시어 비록 주자성리학을 정통으로 택한 시문학과는 병행이 되고 있으나 학술문화 발전에 변함없는 공존의 의의가 부여되고 있다. 학문과 사상에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듯이 시비는 천하의 공론이 되어야 할 것이고 이…
지난 2001년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일본 연구자의 한국사에 관한 인식 중 상호 공통된 부분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기로 합의를 했다. 이 합의의 결과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탄생되었고, 양국의 연구 위원들은 모두 19개의 공통주제를 선정하여 그 주제에서 드러나는 상호 역사 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기로 …
순국 400주년에 충의공 업적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2022년은 정기룡 장군 서거 400주년이면서, 임진왜란 발발 430주년이다. 역사적으로 기념해야 할 뜻깊은 시기에 하동군 및 사단법인 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 그리고 한국역사민속학회에서 정기룡 장군 추모 학술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본서는 추모 학술대회의 발표…
선조 4년(1570년)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마지막 귀향길에 누군가 정치에 대해 물었습니가.
“사대부는 언제 벼슬에 나가고, 또 물러나야 합니까?”
선생께서는 “기(幾)・세(勢)・사(死), 세 글자면 충분하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분위기(幾微)를 잘 살펴야 어긋나지 않는다…
2017년 10월 31일,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정확히 말하면 〈17세기~19세기 한일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가 ‘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통신사는 16세기 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침략을 행한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 양국의 평화적인 관계구축 및 유지에 크게 공헌했다.…
왜관(倭館) 외부와 내부의 측면에서 보는 그 양면성
倭館이란 좁은 의미로는 15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한반도에 설치되어 있던 일본 사절을 위한 접대시설(客館)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객관을 포함하여 왜관 주변에 퍼져 있는 일본인을 위한 거주구역을 가리킨다. 즉 왜관은 통교와 무역을 원하며 내항하는 일본인…